예나 이제나/박경용 예나 이제나/박경용 어디를 가나, 어느 동네 어느 골목엘 가보나, 예나 이제나 달라질 데 없는 것은 놀자고 서로 부르고 대답하는 아이들의 소리란다. ― 요옹이야 노올자! ― 그으래 길게 길게 꼬리를 끄는 새콤한 그 소리 맛. 어쩐지, 그 소리만 들으면 눈물 난다는 울 엄마. ―박경용(1940..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31
안개의 나라/김광규 안개의 나라/김광규 언제나 안개가 짙은 안개의 나라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므로 안개 속에 사노라면 안개에 익숙해져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안개의 나라에서는 그러므로 보려고 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 듣지 않으..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31
셔/오승철 셔/오승철 솥뚜껑 손잡이 같네 오름 위에 돋은 무덤 노루귀 너도바람꽃 얼음새꽃 까치무릇 솥뚜껑 여닫는 사이 쇳물 끓는 봄이 오네 그런 봄 그런 오후 바람 안 나면 사람이랴 장다리꽃 담 넘어 수작하는 어느 올레 지나다 바람결에도 슬쩍 한 번 묻는 말 "셔?" 그러네, 제주에선 소리보다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31
녹음/신달자 녹음/신달자 무거워 보인다 잎새 하나마다 태양이 엉덩이를 깔고 누웠는지 잎새 하나마다 한 채 눈부신 궁궐이다 그 궁궐 호수도 몇 개 거느리고 번쩍 튀어 오르는 물고기들 위로 위로 쏘는 화살처럼 휘번뜩거리는데 이런 세상에 이 출렁이는 검푸른 녹음의 새빨간 생명들이 왁자지껄 껴..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31
쌀 빚을 탕감해달라고 관아에 바친다(呈分司乞蠲戶米·정분사걸견호미)/정초부 쌀 빚을 탕감해달라고 관아에 바친다(呈分司乞蠲戶米·정분사걸견호미) 호젓한 집을 개울가 응달에 장만하여 메추라기와 작은 숲을 나눠 가졌는데 썰렁한 부엌에는 아침밥 지을 불이 꺼졌고 쓸쓸한 방아에는 새벽 서리만 들이친다. 초가삼간에는 빈 그릇만 달랑 걸려 있고 쌀알 한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31
시인/최승자 시인/최승자 시인은 여전히 컹컹거린다. 그는 시간의 가시뼈를 잘못 삼켰다. 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시간의 뼈를 그러나 시인은 삼켰고 그리고 잘못 삼켰다. 이 피곤한 컹컹거림을 멈추게 해다오. 이 대열에서 벗어나게 해다오. 내 심장에서 고요히,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는 것을 나는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31
좋은 햇살/신현득 좋은 햇살 좋은 햇살 기저귀 하나만 말리기엔 아깝죠. 오줌 싼 아기 이불도 내다 걸어요. 아깝다며 호박잎 큰 손이 햇살을 받아 모아요. "아깝다." "아깝다." 숲에서, 들에서 햇살을 받아 모으는 초록빛 손 손 손…. ―신현득(1933~ ) 우리는 햇살 아까운 줄을 모르고 산다. 어디 햇살뿐이랴.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31
빈 자리가 필요하다/오규원 빈 자리가 필요하다 빈 자리도 빈 자리가 드나들 빈 자리가 필요하다 질서도 문화도 질서와 문화가 드나들 질서와 문화의 빈 자리가 필요하다 지식도 지식이 드나들 지식의 빈 자리가 필요하고 나도 내가 드나들 나의 빈 자리가 필요하다 친구들이여 내가 드나들 자리가 없으면 나의 어..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09
시암(詩庵)의 봄/정완영 내가 사는 초초(艸艸) 시암(詩庵)은 감나무가 일곱 그루 여릿여릿 피는 속잎이 청이 속눈물이라면 햇살은 공양미 삼백 석 지천으로 쏟아진다 옷고름 풀어 논 강물 열두 대문 열고 선 산 세월은 뺑덕어미라 날 속이고 달아나고 심봉사 지팡이 더듬듯 더듬더듬 봄이 또 온다 -정완영(1919~ )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09
종소리/서정춘 종소리 한 번을 울어서 여러 산 너머 가루가루 울어서 여러 산 너머 돌아오지 말아라 돌아오지 말아라 어디 거기 앉아서 둥근 괄호 열고 둥근 괄호 닫고 항아리 되어 있어라 종소리들아 ―서정춘(1941~ ) 물 건너온 종의 깽깽거리는 것, 여기 오라는 그 '신호' 말고 우리나라 옛 종소리, 들리..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