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의 얼굴/박목월 참새의 얼굴 얘기가 하고 싶은 얼굴을 하고 참새가 한 마리 기웃거린다 참새의 얼굴을 자세히 보라 모두들 얘기가 하고 싶은 얼굴이다 아무래도 참새는 할 얘기가 있나 보다 모두 쓸쓸하게 고개를 꼬고서 얘기가 하고 싶은 얼굴이다 -박목월(1916~1978) 언제나 까불대고 촐랑거리는 줄만 알..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4.12
우화(寓話)/ 장수현 우화(寓話) 점심 때 소머리국밥 먹고 트림하면 소 울음소리 난다 ―샐러리맨은 소의 후손이야 ―넥타이는 신종 고삐지 거울 속 음매음매 울며 나를 쳐다보는 소 한 마리 콘크리트로 무장된 도시 더 이상 갈아엎을 수 없다 ―발굽이 다 닳았군 ―가죽도 헐거워졌어 나는 또 도살장에 끌려..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4.03
좌복/이홍섭 좌복 외진 절에서 기다란 좌복 하나를 얻어왔다 누구에게나 텅 빈 방 안에서 온몸으로 절을 올리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찔레나무 가지 끝에서 막 고개를 쳐드는 자벌레 한 마리 가지가 찢어져라 애먼 하늘을 볼 때 —이홍섭(1965~ ) *좌복: 참선이나 절을 할 때 쓰는 방석 우리들 생(..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4.02
봄 들녘에서(春望) ―이병연 봄 들녘에서(春望)―이병연(1671~1751) 버들잎 느릅나무 잎 용나무 잎은 파래졌고 매화꽃 살구꽃 배꽃은 활짝 피었네 꾀꼬리 제비 백조는 날고 황어 홍어 반어(斑魚)는 돋치네 콩이랑 팥은 새싹 돋아나고 밀이랑 보리는 제법 물결을 이뤘네 그중에 물까마귀는 뭣 하는 놈인지 오른쪽은 매발..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4.02
강의 안쪽에서/전동균 강의 안쪽에서 들오리 떼 지나가고 한결 깊어진 강의 안쪽에서 푸른 갈댓잎 한 장, 비밀문서처럼 내 앞으로 천천히 흘러왔네 출렁이는 온 강물을 싣고, 그 알 수 없는 고요의 눈동자 반짝이면서 한칸 반 낚시대 끝을 가만히 흔들었네 그때, 별이, 아랫도리 다 벗은 아이 같은 저녁별이 떠..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3.29
봄시내ㅣ이원수 봄 시내 마알가니 흐르는 시냇물에 발 벗고 찰방찰방 들어가 놀자 조약돌 흰 모래 발을 간질이고 잔등엔 햇볕이 따스도 하다 송사리 쫓는 마알간 물에 꽃 이파리 하나 둘 떠내려온다 어디서 복사꽃 피었나보다 -이원수(1911~1981) 봄은 언제나 아이들 차지였다. 늘 머리에 까치집을 짓고 사..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3.29
꽃의 위치에 대하여/천상병 꽃의 위치에 대하여 꽃이 하등 이런 꼬락서니로 필 게 뭐람 아름답기 짝이 없고 상냥하고 소리 없고 영 터무니없이 초대인적(超大人的)이기도 하구나. 현명한 인간도 웬만큼 해서는 당하지 못하리니…… 어떤 절색황후께서도 되려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이런 이름 짓기가 더러 있었지 않..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3.29
냉이꽃/이병기 냉이꽃 밤이면 그 밤마다 잠은 자야 하겠고 낮이면 세때 밥은 먹어야 하겠고 그리고 또한 때로는 詩도 읊고 싶고나 지난봄 진달래와 올 봄에 피는 진달래가 지난 여름 꾀꼬리와 올 여름에 우는 꾀꼬리가 그 얼마 다를까마는 새롭다고 않는가 태양이 그대로라면 지구는 또 어떨 건가 수소..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3.29
관악산 꽃 무더기 (冠峀花層·관수화층)/신경준 관악산 꽃 무더기 (冠峀花層·관수화층) 앞다퉈 핀 철쭉꽃 위로 躑躅花爭發(척촉화쟁발) 아침 햇살 내려 쪼인다 朝曦又照之(조희우조지) 온 산 가득 붉은빛이라 滿山紅一色(만산홍일색) 파란 데가 외려 멋지다 靑處也還奇(청처야환기) 제철 만난 산꽃은 어여쁘게 得意山花姸(득의..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3.26
느낌/이성복 느낌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종이 위의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이성복(1952~ ) 대고모가 집에 오면 집안 분위..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