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복어국 먹는 계절 / 권상신 서울은 복어국 먹는 계절 (憶洛中河豚羹·억낙중하돈갱) 봄철은 한강에서 복어 잡는 계절 복사꽃 필 무렵 그 시절이 그리워라 기름 치고 미나리 삶아 꿀물에 섞어 맛 좋은 국을 나눠 손님들께 대접했었지 이곳에 멀리 오니 어느 누가 입에 댈까 지난날 흥겹던 일이 전생처럼 아득하다 가..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09
사월 비/이제하 사월 비 보소, 보이소로 오시는 사월 가랑비 헤어진 여자 같은 사월 가랑비 잔치도 끝나고 술도 다 깨고 피도 삭고 꿈도 걷히고 주머니마저 텅텅 빈 이른 새벽에 가신 이들 보이는 건널목 저편 사랑한다, 한다 횡설수설하면서 어디까지 따라오는 사월 가랑비 -이제하(1937~ ) 친구들과 조그..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09
꽃사슴/유경환 꽃사슴 아가의 새 이불은 꽃사슴 이불 포근한 햇솜의 꽃사슴 이불 소로록 잠든 아가 꿈속에서 꽃사슴 꽃사슴 타고 놉니다. —유경환(1936~2007) 요즈음엔 동네에서 아기를 볼 수 없다. 예전엔 골목길에서 놀던 여자아이 등에 업혀 쌔근쌔근 잠든 아기를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보기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09
모닥불/백석 모닥불/백석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와장도 닭의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09
내 사랑은/박재삼 내 사랑은/박재삼 한빛 황토(黃土)재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 아래 가라앉는, 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고나. 몸으로, 사내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 부연 들기름불이 지지지 지지지 앓고,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 갈래 만(萬) 갈래. 여울 바닥에는 잠 안 자는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09
꽃다발―자크 프레베르 꽃다발 거기서 무얼 하시나요, 작은 아씨여 갓 꺾은 꽃을 들고. 거기서 무얼 하시나요, 처녀여 시든 꽃을 들고. 거기서 무얼 하시나요, 늙은 여인이여 죽어가는 꽃을 들고. 승리자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자크 프레베르(1900~1977) 다 몰라도 여자에게만은 잘 보이고 싶다. 잘 보여야 한다.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09
박 농사 호박 농사/권태응 박 농사 호박 농사 지붕엔 성기성기 박 덩굴 퍼지고 하양 꽃이 만발 아기 박이 동글 울타리엔 엉기엉기 호박 덩굴 퍼지고 노랑 꽃이 만발 아기 호박 동글 우리 집도 옆집도 오곤자근* 똑같이 지붕엔 박 농사 울타리엔 호박 농사 ―권태응(1918~1951) *오곤자근: 권태응 시인의 시에 자주 나오..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09
아버지의 밭·1- 박권숙 아버지의 밭·1 그곳은 언제나 초록빛 숲에 닿아 있다 달팽이의 노란 등짐 혹은 작은 자벌레의 투명한 행로만으로 무성한 눈물자국 소리와 빛의 고랑을 고루 헤쳐 보면 안다 흰 두건 쓴 앞산이 쇠호미를 잡으면 텃밭의 깊은 뿌리가 숲 쪽으로 기운다 비 그친 뒤 얘야 보아라 흙은 자꾸 부..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4.13
담백함(澹泊) - 허필 담백함(澹泊) 담백함은 가난뱅이가 살아가는 법 澹泊貧家事(담박빈가사) 등불 없어 달 뜨기만 기다린다 無燈待月明(무등대월명) 꽃을 꺾자니 사랑스러운 것을 어떻게 없애고 折花難割愛(절화난할애) 풀을 베자니 산 것을 차마 해치랴 芟草忍傷生(삼초인상생) 백발은 당연히 내 차지고 白..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4.12
나무들 5/김남조 나무들 5/김남조 무게를 견디는 자여 나무여 새둥지처럼 불거져 나온 열매들을 추스르며 추스르며 밤에도 잠자지 않네 실하게 부푸는 과육 가지가 휘청이는 과실들을 들어 올려라 들어 올려라 중천의 햇덩어리 너의 열매 무게가 기쁨인 자여 나무여 늘어나는 피와 살 늘수록 강건한 탄력..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