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는 웃는다/유홍준 저수지는 웃는다 저수지에 간다 밤이 되면 붕어가 주둥이로 보름달을 툭 툭 밀며 노는 저수지에 간다 요즈음의 내 낙은 저수지 둑에 오래 앉아 있는 것 아무 돌멩이나 하나 주워 멀리 던져보는 것 돌을 던져도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는 저수지의 웃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긴긴 한숨을..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7.11
장국밥/민병도 장국밥 울 오매 뼈가 다 녹은 청도 장날 난전에서 목이 타는 나무처럼 흙비 흠뻑 맞다가 설움을 붉게 우려낸 장국밥을 먹는다. 5원짜리 부추 몇 단 3원에도 팔지 못하고 윤사월 뙤약볕에 부추보다 늘처져도 하굣길 기다렸다가 둘이서 함께 먹던…… 내 미처 그때는 셈하지 못하였지만 한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7.11
어떤 찬란한 것도 오래가지 못하리/로버트 프로스트 [가슴으로 읽는 시] 어떤 찬란한 것도 오래가지 못하리 자연의 연초록은 찬란하지만, 지탱하기 제일 힘든 색. 그 떡잎은 꽃이지만, 한 시간이나 갈까. 조만간 잎이 잎 위에 내려앉는다. 그렇게 에덴은 슬픔에 빠지고, 새벽은 한낮이 된다. 어떤 찬란한 것도 오래가지 못하리. ―로버트 프로..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7.11
빗속의 고래싸움 고래가 비를 맞으며 바다에서 노는데 솟구친 이마와 코, 기세가 흉포하다 높은 파도 말아 올려 우주를 막아선 듯 외로운 섬 뒤흔들어 폭풍우가 싸우는 듯 대양의 남만(南蠻) 배는 뒤집힐까 걱정하고 바닷가 어촌에는 비린내가 뒤덮였다 회를 치면 배부르게 포식 한번 하겠구나 허리에 찬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6.10
초록 풀물/공재동 초록 풀물 풀밭에서 무심코 풀을 깔고 앉았다. 바지에 배인 초록 풀물 초록 풀물은 풀들의 피다. 빨아도 지지 않는 풀들의 아픔 오늘은 온종일 가슴이 아프다. ―공재동(1949~ ) 유재일 바지에 밴 풀물이 풀들의 피라는 생각이 참으로 놀랍다. 무심코 풀을 깔고 앉았다가 바지에 밴 풀물을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6.10
풍경(風磬)/김제현 풍경(風磬) 뎅그렁 바람 따라 풍경이 웁니다. 그것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일 뿐, 아무도 그 마음속 깊은 적막을 알지 못합니다. 만등(卍燈)이 꺼진 산에 풍경이 웁니다. 비어서 오히려 넘치는 무상의 별빛. 아, 쇠도 혼자서 우는 아픔이 있나 봅니다. ―김제현(1939~ ) /유재일 풍경(風磬..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6.10
담장/박용래 담장 梧桐꽃 우러르면 함부로 怒한 일 뉘우쳐진다. 잊었던 무덤 생각난다. 검정 치마, 흰 저고리, 옆가르마, 젊어 죽은 鴻來 누이 생각도 난다. 梧桐꽃 우러르면 담장에 떠는 아슴한 대낮. 발등에 지는 더디고 느린 遠雷. ―박용래(1925~1980) 초여름, 마당가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있기 좋은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6.10
운자(韻字)를 부르기에―서영수각(徐靈壽閣·1753~1823) 운자(韻字)를 부르기에* (呼韻·호운) 시장과 먼 곳에다 살 곳 정하고 약초 심고 이엉 엮어 집을 지었네 꽃 앞에는 술이 있어 함께 취하나 버들 아래 문 있어도 찾는 이 없네 방과 방엔 책과 그림 가득 채우고 부엌에는 생선과 나물 넉넉하여라 지극한 즐거움이 여기 있나니 속인들 조롱해..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6.10
월요일/윤이현 월요일/윤이현 화, 수, 목, 금, 토, 일 아무래도 어색해 월요일이 빠지니까. 언제고 첫 번째가 중요하거든. '1'도 그렇고 '하나'도 그렇고 시작이 똑바른 게 좋은 거라구.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라고 해야지 '월요일'보고 말야. ―윤이현(1939~ ) 어린 시절엔 '만날 일요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6.10
집/고은 집/고은 안에서 삽사리 꼬리 기쁨이 마중나왔다 안에서 내 마음이 마중나왔다 철모를 벗고 총을 내려 놓았다 탄띠를 풀었다 황소가죽 워커를 벗고 왼발부터 양말을 벗었다 맨발 둘이 새싹인 듯 불쌍하게시리 나와 있다 아내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울음이 이루어졌다 ―고은(1933~ ) 이것은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