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내게 축하한다/충지 한가한 내게 축하한다/충지 날마다 산을 보건마는 아무리 봐도 늘 부족하고 언제나 물소리를 듣건마는 아무리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다. 자연으로 향하면 귀와 눈은 다 맑고도 상쾌해 그 소리와 그 빛 사이에서 평온한 마음 가꾸어야지. ―충지(沖止·1226~1292) 閑中自慶(한중자경) 日日看..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7.11
덤/하청호 덤/하청호 엄마 심부름으로 시장에 갔다 기특하다고 콩나물 한 줌 덤으로 받고 감자도 한 개 덤으로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소낙비가 내렸다 잠시 후, 하늘은 내게 착하다며 푸른 가슴을 열고 오색 무지개를 덤으로 보여 주었다 ―하청호(1943~ ) /유재일 으레 아이들 몫이었던 심부름은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7.11
지 에이 피/임채성 지 에이 피/임채성 지나치듯 슬몃 본다, 백화점 의류매장 명조체로 박음질한 GAP상표 하얀 옷을 누구는 ‘갑’이라 읽고 누군 또 ‘갭’이라 읽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갑이 있고 갭이 있다 아무런 잘못 없어도 고개 숙일 원죄 위에 쉽사리 좁힐 수 없는 틈새까지 덤으로 입는, 하루에도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7.11
메아리/마종기 메아리/마종기 작은 호수가 노래하는 거 너 들어봤니. 피곤한 마음은 그냥 더 잠자게 하고 새벽 숲의 잡풀처럼 귀 기울이면 진한 안개 속에 몸을 숨긴 채 물이 노래하는 거 들어봤니? 긴 피리 소리 같기도 하고 첼로 소리인지 아코디언인지, 멀리서 오는 밝고 얇은 소리에 새벽 안개가 천..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7.11
별을 노래하다/이좌훈 별을 노래하다/이좌훈 밤 깊어 맑은 달 아래에서 뭇별이 한창 반짝거리네. 옅은 구름으로는 가리지 못하고 찬바람 불면 빛이 더 반짝이네. 진주알 삼만 섬이 파란 유리에서 반짝반짝! 허무에서 별빛이 무수히 일어나 우주의 원기를 북돋네. 부슬부슬 이슬꽃 내리고 동쪽에는 은하수 흐르..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7.11
나무와 구름/박재삼 나무와 구름/박재삼 나무들은 모두 숨이 차다 그러나 하늘의 구름들은 하나같이 평상(平床)에 누은 듯 태평(太平)이 몸짓으로 옷자락만 나부끼고 있을 뿐이다. 나무들은 구름이 그리워 연방 손을 흔들고 있지만 구름들은 어디까지나 점잖은 외면이다.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너를 향해 지..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7.11
포플러/어효선 유재일 포플러/어효선 키장다리 포플러를 바람이 자꾸만 흔들었습니다. 포플러는 커다란 싸리비가 되어 하늘을 쓱쓱 쓸었습니다. 구름은 저만치 밀려가고 해님이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어효선(1925~2004) 포플러가 서 있는 여름 풍경이 포플러 잎사귀처럼 새뜻하다. 이 동시를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7.11
책을 읽으며 ―못에 관한 명상 35/김종철 책을 읽으며 ―못에 관한 명상 35/김종철 허리 굽은 세상 하나 건너와 잠 못 이룰 때가 많아졌다 그런 밤에 누군가 돋보기 쓰고 책장을 넘긴다 책장 문턱에 이마를 부딪히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지나간다 플랫폼에 도착했다. 플·랫·폼·에·플·랫·플………… 눈까풀이..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7.11
바람벌/이호우 바람벌/이호우 그 눈물 고인 눈으로 순아 보질 말라 미움이 사랑을 앞선 이 각박한 거리에서 꽃같이 살아 보자고 아아 살아 보자고. 욕(辱)이 조상(祖上)에 이르러도 깨달을 줄 모르는 무리 차라리 남이었다면, 피를 이은 겨레여 오히려 돌아앉지 않은 강산(江山)이 눈물겹다. 벗아 너 마자..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7.11
열한살/이영광 열한살/이영광 열한살 아이가 서먹서먹 엄마 곁에 앉으며 엄마, 난 어디서 왔어? 난 누구야? 묻다가는 시무룩해져 골똘히 생각에 잠길 때. '자기'라는 방문객 고락의 처음. 피 흐르는 몸을 지나 여기 왔으나 실은 아득히 먼 곳의 자식. 허공과의 평생 내전이 허공에의 눈먼 사랑이 점화하는..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