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꽃/김용택 달맞이꽃 언니, 안 갔지? 안 갔어. 언니, 아직 거기 있지? 응 언니, 지금도 달 떠 있어? 응 언니, 응 시방도 거기 있지? 안 갈게 걱정 마. 빨리 응가나 해 알았어. 우리 언니 달맞이꽃 ―김용택(1948~ ) /유재일 이 동시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어른들에겐 아련한 추억의 풍경이다. 시골 농..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9.10
구름/김수복 구름 저 구름은, 그리운 물푸레나무 머리 위에 앉았다가도 다시 햇살이 되어 해바라기 눈속에 들어가 해바라기가 되었다가 다시 해일이 되어 먼 섬 하나 들어올렸다가도 그리운 사람 마음속 무지개 되었다가, 굽이치다가, 서러운 강물 위에 누웠다가, 퍼지게 누웠다가, 몸속과 몸밖을 드..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9.10
미타원에 와서/백이운 미타원에 와서/백이운 하얀 등 너울거리며 길을 열어 놓았다 수묵화 번져가듯 스러져간 생애들이 그렇게 갖고 싶었던 고요의 집 한 채. 혼자 죽은 어느 이름도 가볍지가 않구나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꿈결처럼 되뇌며 마지막 온 힘을 다해 써내려간 정자체. 비로소 떠오른다 그 눈물빛 사..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9.10
님/김지하 님 가랑잎 한 잎 마루 끝에 굴러들어도 님 오신다 하소서 개미 한 마리 마루 밑에 기어와도 님 오신다 하소서 넓은 세상 드넓은 우주 사람 짐승 풀 벌레 흙 물 공기 바람 태양과 달과 별이 다 함께 지어놓은 밥 아침저녁 밥그릇 앞에 모든 님 내게 오신다 하소서 손님 오시거든 마루 끝에서..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9.10
여름밤/유득공 여름밤/유득공 개구리도 맹꽁이도 풀섶에서 잠잠하고 달 밝은 뜨락에는 홑옷을 다리는데 하늘에서 이슬 내려 이렇듯이 시원할 때 희디흰 봉숭아꽃 함초롬히 젖어 있네 날 저물자 박쥐란 놈 헛간을 돌아 날고 비 그쳐 젖은 뜰을 두꺼비 이사 가네 담 모퉁이 무너져서 달빛은 쏟아지고 박..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9.10
맴/김구연 맴 잠자리 고추잠자리 마당을 빙빙 잘 도네 댑싸리 비를 들고서 새빨간 뒤를 쫓으면 용닥꿍 약을 올리며 봉남이 맴을 돌리네 ―김구연(1942~ ) 김현지 무더위가 한풀 꺾이면서 벌써 가을의 냄새를 맡았는지 벌레 소리 또랑또랑해지고 잠자 리들도 푸른 하늘을 난다. 하늘빛 잠자리채를 들..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9.10
장백폭포/김영재 목어는 속 비워야 소리가 맑아지고 밴댕이 속 좁아서 망망대해 제 것이다 장백산 一字 폭포는 떨어, 떨어져야 ―김영재(1948~ )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은 그렇게 박혀 있다. 그래서 천지(天池)를 더 뜨겁게 찾는가. 여름이면 많은 사람이 성소(聖所)라도 찾듯 백두산을 오른다. 하지만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9.10
뜻밖의 만남/비스와바 심보르스카 뜻밖의 만남 우리는 서로에게 아주 공손하게 대하며, 오랜만에 만나서 매우 기쁘다고 말한다. 우리의 호랑이들은 우유를 마신다. 우리의 매들은 걸어 다닌다. 우리의 상어들은 물에 빠져 허우적댄다. 우리의 늑대들은 훤히 열려진 철책 앞에서 하품을 한다. 우리의 독뱀은 번개를 맞아 전..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9.10
송붕(松棚)/권필 송붕(松棚) 작은 초가라서 처마가 짧아 무더위에 푹푹 찔까 몹시 걱정돼 서늘한 솔잎으로 햇살을 가려 한낮에도 욕심껏 그늘 얻었네 새벽에는 이슬 맺혀 목걸이로 뵈고 밤에는 바람 불어 음악으로 들리네 도리어 불쌍해라, 정승 판서 집에는 옮겨 앉는 곳마다 실내가 깊네 小屋茅簷短..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9.10
구석/이창건 구석 나는 구석이 좋다 햇살이 때때로 들지 않아 자주 그늘지는 곳 그래서 겨울에 내린 눈이 쉽게 녹지 않는 곳 가을에는 떨어진 나뭇잎들이 구르다가 찾아드는 곳 구겨진 휴지들이 모여드는 곳 어쩌면 그 자리는 하느님이 만든 것인지도 모르지 그곳이 없으면 나뭇잎들의 굴러다님이 언..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