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산지 / 박현덕 주산지 / 박현덕 종일 물결 철썩이는 여긴 차가운 감옥이다 목 치켜든 나무마다 하나 둘 호명하면 한 생을 비우고 비워도 푸른 꿈들 뒤척인다 혁명에 실패했던 어느 왕조의 민초일까 비바람에 쓸리어 무덤은 수장되고 저 안의 뼈들이 자라 하늘 밀어 올린다 ―박현덕(1967~ ) 경북 청송 주..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1.25
세상의 절반/진은영 세상의 절반 세상의 절반은 붉은 모래 나머지는 물 세상의 절반은 사랑 나머지는 슬픔 붉은 물이 스민다 모래 속으로, 너의 속으로 세상의 절반은 삶 나머지는 노래 세상의 절반은 죽은 은빛 갈대 나머지는 웃자라는 은빛 갈대 세상의 절반은 노래 나머지는 안 들리는 노래 ―진은영(1970~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9.17
누이를 보내고 別妹(별매)/신광수 누이를 보내고 別妹(별매) 아침에 해남으로 누이를 보냈는데 하루 종일 몹시도 날이 차구나. 오누이로 태어나 처음 헤어져 강산은 갈수록 멀어만 가네. 스산한 바람은 거세게 불고 밤들어 슬픔은 아련히 밀려오네. 지금쯤 어느 주막에 들어가 집 생각에 눈물을 쏟고 있을까? 海南朝送妹(..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9.17
밥숟갈을 닮았다/최승호 밥숟갈을 닮았다/최승호 움푹해라 내 욕망은 밥숟갈을 닮았다 천만 개의 숟갈이 한 냄비에 덤비듯 꿀꿀거리고 덜그럭대는 서울에서 나도 움푹한 욕망 들고 뛰어가고 보름달 뜨면 먹고 싶어라 둥근 젖 움켜쥘 그때부터 나는 아귀였던가 부르도자가 움푹한 입 벌리며 굴러가고 기름진 돼..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9.17
웃는 기와/이봉직 웃는 기와 옛 신라 사람들은 웃는 기와로 집을 짓고 웃는 집에서 살았나 봅니다 기와 하나가 처마 밑으로 떨어져 얼굴 한쪽이 금가고 깨졌지만 웃음은 깨지지 않고 나뭇잎 뒤에 숨은 초승달처럼 웃고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한 번 웃어주면 천 년을 가는 그런 웃음을 남기고 싶어 웃는..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9.17
家庭/이상 家庭 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 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 나는우리집내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 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減해간다. 食口야封한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 지붕에서..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9.17
나팔꽃/박명숙 나팔꽃 첫새벽이 다가와 찬물을 끼얹자 팽팽히 귀를 매둔 어둠의 솔기가 터졌다 보랏빛 벨벳으로만 안을 덧댄 어둠이었다 여름밤은 달아나고 어둠의 딸 태어나 넝쿨손 뽑아올리며 혈통을 증거한다 한 뼘씩 허공을 디디며 아침에게로 기어간다 ―박명숙(1955~ ) 소임을 다하듯 저를 힘껏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9.17
새를 기다리며/전봉건 새를 기다리며 화가 이중섭의 그림책에서 제주도의 먼바다나 통영의 비탈진 낮은 마을 그런 것이 보이는 그림 한 장 떼어서 작은 액자에 넣어 걸어놓고 낡은 테이프 잡음이 좀 나기는 하지만 바하의 관현악 모음곡 제2번 B단조 플루트가 나오는 그것 장난감 같은 카세트에 볼륨 너무 크지..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9.17
시험에 떨어지고/wkddb 시험에 떨어지고 送張生希稷下第後歸海西婦家 (송장생희직하제후귀해서부가) 책 보따리 달랑 들고 부모 곁을 떠났건만 객지에서 고생 끝에 실의하여 돌아가네 과거에 급제 못한 오늘의 한 어찌 풀까 고향의 박 넝쿨은 이태 넘게 못 보았네 자넨 시름겹게 바다의 달만 보며 가고 나는 구..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9.10
옛날 사람/곽효환 옛날 사람 때론 사랑이 시들해질 때가 있지 달력 그림 같은 창밖 풍경들도 이내 무료해지듯 경춘선 기차 객실에 나란히 앉아 재잘거리다 넓은 어깨에 고개를 묻고 잠이 든 그 설렘도 덕수궁 돌담길 따라 걷던 끝날 것 같지 않은 그 떨림도 북촌 마을 막다른 골목 가슴 터질듯 두근거리던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