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언제 피는가/김종해 꽃은 언제 피는가 사랑하는 이의 무늬와 꿈이 물방울 속에 갇혀 있다가 이승의 유리문을 밀고 나오는, 그 천기의 순간, 이순의 나이에 비로소 꽃피는 순간을 목도하였다 판독하지 못한 담론과 사람들 틈새에 끼어 있는, 하늘이 조금 열린 새벽 3시와 4시 사이 무심코 하늘이 하는 일을 지..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8.10
물구경/심육 물구경 아침 되어 물을 보러 누각에 올랐더니 비는 내려 어둑어둑 늦어서도 아니 갠다 높은 물결 덮쳐와서 작은 섬을 뒤흔들고 포효하는 물소리는 미친 우레 구르는 듯 행인은 말 세우고 강 건너기 걱정하고 어부는 배 옮기나 힘에 부쳐 고생한다 성 밑으로 아이들은 앞을 다퉈 낚시하여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8.10
고양이 잠/정두리 고양이 잠/정두리 턱 받치고 오그리며 자다가 움찔, 그러다 다시 잔다 ―얘, 제대로 누워 자라 좀만 자고 일어나야지 아직 숙제가 남았어 불편한 잠자리 불안한 샛잠 그래도 잠이 온다 고양이처럼 온다 ―정두리(1947~ ) 학교 다니던 시절엔 왜 그리 숙제가 많았던지, 그리고 왜 그리 숙제가..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8.10
새와 수면/이정환 /유재일 새와 수면/이정환 강물 위로 새 한 마리 유유히 떠오르자 그 아래쪽 허공이 돌연 팽팽해져서 물결이 참지 못하고 일제히 퍼덕거린다 물속에 숨어 있던 수천의 새 떼들이 젖은 날갯죽지 툭툭 털며 솟구쳐서 한순간 허공을 찢는다. 오오 저 파열음! ―이정환(1954~ ) 일파만파(一波萬..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8.10
유혹/황지우 유혹/황지우 여름 동안 창가 紫薇꽃이 붉게 코팅한 통유리; 잘못 들어온 말벌 한 마리가 유리 스크린을 요란하게 맴돈다 환영에 鐵날개를 때리며 어? 여기가 바깥인데 왜 안 나가지냐? 無明盡亦無無明盡* 바깥을 보는 것까지는 할 수가 있지, 허나, 바깥으로 한번 나가보시지 아아, 울고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8.10
감회가 있어/이덕무 /유재일 감회가 있어 농부의 별은 새벽녘 공중에서 반짝이고 안개 뚫고 서리 맞으며 동편 논으로 나간다. 시고 짠 세상맛은 긴 가난 탓에 실컷 맛보았고 냉대와 환대는 오랜 객지 생활에서 뼈저리게 겪었지 부모님 늙으셨으니 천한 일을 마다하랴 재주가 모자라니 육체노동하기 딱 어울..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8.10
할머니의 새끼/신기섭 할머니의 새끼 빨랫줄 잡고 할머니 변소 가네요 땅을 비집고 올라온 느릅나무 뿌리처럼 돌아간 왼쪽 발목 왼쪽 손목은 자꾸만 못 간다, 못 간다, 하는데도 할머니 손에 빨래집게 하나, 둘, 셋, 넷…… 계속해서 밀려가고 영차영차 할머니 변소에 막 당도했네요 때려치운 공장의 기계 돌아..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8.10
낙타/손동연 낙타 저런, 등에 혹이 두 개씩이나? 사막을 터벅터벅 무겁겠다 얘 아니야, 이건 내 도시락인걸! 타박타박 사막이 즐겁단다 얘 ―손동연(1955~ ) 어린 시절 그림책에서 처음 본 사막은 신기했다. 모래바람이나 신기루도 신기했지만 어린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등에 혹이 달린 낙타였다. 불룩..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8.10
비/서숙희 비/서숙희 아무도 없는 밤을 누가 톡톡 두드린다 창문을 활짝 열고 귀마저 환하게 연다 늦도록 불 켜진 창에 빗금들이 깃을 부빈다 가볍게 스치는 여린 물빛의 느낌표들 빗금과 빗금 사이 번짐이 함뿍 젖어 투명한 울먹임으로 가슴에 스며든다 뒤척이는 한 영혼과 명징한 빗소리가 적막..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7.11
우물 치는 날/정인섭 우물 치는 날/정인섭 비가 갠 이튿날 우물을 치려고 어른들은 머리를 감아 빗고 흰옷을 갈아입었다 신발도 빨아 신었다 손 없다는 날 마을은 개도 안 짖고 하늘이 어디로 다 가서 텅 비었다 늬들 누렁코도 부스럼도 쌍다래끼도 우물 땜시 다 벗었니라던 할매 말씀이 참말이라고 우리들은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