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신형건 메아리/신형건 네가 소리쳐 부르면 난 우뚝 산으로 설래. 네 목소린 내 마음속에 깊이깊이 울려 퍼지겠지. 그걸 메아리로 돌려보낼래. ―너를 좋아해! ―너를 좋아해! ―정말이야! ―정말이야! 그러다 가끔 넌 장난도 치겠지. ―널 미워해! 그럼 난 움찔 놀랄 거야. 하지만 난 흉내쟁이가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1.25
아지랑이/조오현 아지랑이/조오현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이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조..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1.25
정선아리랑 / 우은숙 정선아리랑 / 우은숙 손도 발도 다 녹고 목소리만 남았나 봐 목젖만 남겨놓고 몸 던지는 꽃잎처럼 혼자서 흘러왔다가 터져버린 폭포처럼 울 수조차 없는 한(恨)을 안으로 삭히며 강 밑바닥 물청때를 밀봉 풀고 건진 소리 잘 익은 막걸리 속엔 후렴구만 짙게 핀다 ―우은숙(1960~ ) '눈이 오..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1.25
달에 기어간 흔적이 있다/박형준 달에 기어간 흔적이 있다/박형준 달에 기어간 흔적이 있다 펄럭거리는 잎맥 자국이 있다 대야의 물로 성(性)을 씻는 여인 자신의 아랫도리를 바라본다 거울 속에서 민달팽이가 긴다 녹색 셀로판지로 된 여인숙 출입문 밖에 바다가 와 있다 여인이 사라지고 대야의 물이 환하다 쭈그리고 ..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1.25
가을날 농가 풍경 秋日田家卽事(추일전가즉사) 가을날 농가 풍경 秋日田家卽事(추일전가즉사) 추수철이 다가오며 날씨가 서늘하니 농촌의 멋진 풍치 꼽아 봐도 좋겠구나. 통발에서 꺼낸 은어 소반 위에 회가 되고 상에 오른 검정 게는 솥 안에서 끓고 있다. 나무 가득 붉은 과일은 햇살에 반짝이고 황금빛 벼이삭은 벌써 서리를 맞았다..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1.25
가을날 농가 풍경 秋日田家卽事(추일전가즉사) 가을날 농가 풍경 秋日田家卽事(추일전가즉사) 추수철이 다가오며 날씨가 서늘하니 농촌의 멋진 풍치 꼽아 봐도 좋겠구나. 통발에서 꺼낸 은어 소반 위에 회가 되고 상에 오른 검정 게는 솥 안에서 끓고 있다. 나무 가득 붉은 과일은 햇살에 반짝이고 황금빛 벼이삭은 벌써 서리를 맞았다..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1.25
밥 생각 / 김기택 밥 생각 / 김기택 차가운 바람 퇴근길 더디 오는 버스 어둡고 긴 거리 희고 둥근 한 그릇 밥을 생각한다 텅 비어 쭈글쭈글해진 위장을 탱탱하게 펴줄 밥 꾸룩꾸룩 소리나는 배를 부드럽게 만져줄 밥 춥고 음침한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밥 잡생각들을 말끔하게 치워버려주고 깨끗해진 머..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1.25
추석/성명진 추석/성명진 성묘를 간다 가시나무 많은 산을 꽃 차림 하고 줄지어 오르고 있다 맨 앞엔 할아버지가 그 뒤엔 아버지가 가며 굵은 가시나무 가지라면 젖혀 주고 잔가지라면 부러뜨려 주고…… 어린 자손들은 마음 놓고 산열매도 따며 산길을 오르고 있다 도란도란 말소리가 흐르고 그렇게..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1.25
가을 지에밥/박기섭 가을 지에밥/박기섭 가을은 해년마다 돗바늘을 들고 와서 촘촘히 한 땀 한 땀 온 들녘을 누벼 간다 봇물이 위뜸 아래뜸 고요를 먹이고 있다 절인 고등어 같은 하오의 시간 끝에 하늘은 또 하늘대로 지에밥을 지어 놓고 수척한 콩밭 둔덕에 두레상을 놓는다 ―박기섭(1954~ ) 태풍 뒤 가을 하..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1.25
멀리 와서 울었네/정은숙 멀리 와서 울었네/정은숙 지하 주차장, 신음 소리 들린다. 방음 장치가 완벽한 차창을 뚫고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울 수 있는 공간을 갖지 못한 사람, 그가 이 깊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 자신의 익숙한 자리를 버리고 그가 낮게 낮게 시간의 파도 속을 떠다닌다. 눈물이 거.. 가슴으로 읽는 詩 2012.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