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피는 동백꽃 / 이생진 혼자 피는 동백꽃 / 이생진 꽃 시장에서 꽃을 보는 일은 야전병원에서 전사자를 보는 일이야 꽃이 동백꽃이 왜 저런 절벽에서 피는지 알아? 그것도 모르면서 꽃을 좋아했다면 그건 꽃을 무시한 짓이지 좋아한 것이 아냐 꽃은 외로워야 피지 외롭다는 말을 꽃으로 한 거야 몸에 꽃이 필 정도의 외로움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4
절벽에서의 유혹 / 이생진 절벽에서의 유혹 - 만재도.29 이생진 이상하게 절벽은 바위지만 유혹은 물이다 순간은 무섭고 그 후는 잔잔하다 유혹은 물이니까 죽음은 텀벙 빠지겠다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4
유배된 섬 / 이생진 유배된 섬 -만재도 6 이생진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흑산도에 유배되었고 최익현 선생도 흑산도 진리에 유배되었다는데 여기 만재도는 섬 그 자체가 유배된 섬 흑산도에서 유배된 섬 가거도로 가고 가거도에서 유배된 섬 만재도로 가고 만재도에게 유배된 섬 '나' 내 섬엔 이름이 없다 '나'에게서 유배..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4
낚시꾼과 시인 / 이생진 낚시꾼과 시인 / 이생진 그들은 만재도에 와서 재미를 못 보았다고 한다 낚싯대와 얼음통을 지고 배를 타기 직전까지도 그 말만 되풀이했다. 날보고 재미 봤냐고 묻기에 나는 낚시꾼이 아니고 시인이라고 헸더니 시는 어디에서 잘 잡히느냐고 물었다 등대 쪽이라고 했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그리로 갔..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4
벌레 먹은 나뭇잎 / 이생진 벌레 먹은 나뭇잎 / 이생진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4
마종기 시모음 축제의 꽃 가령 꽃 속에 들어가면 따뜻하다. 수술과 암술이 바람이나 손길을 핑계 삼아 은근히 몸을 기대며 살고 있는 곳. 시들어 고개 숙인 꽃까지 따뜻하다. 임신한 몸이든 아니든 혼절의 기미로 이불도 안 덮은 채 연하고 부드러운 자세로 깊이 잠들어버린 꽃. 내가 그대에게 가는 여정도 따뜻하리..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4
꽃의 이유 / 마종기 꽃의 이유 / 마종기 꽃이 피는 이유를 전에는 몰랐다. 꽃이 필 적마다 꽃나무 전체가 작게 떠는 것도 몰랐다. 꽃이 지는 이유도 전에는 몰랐다. 꽃이 질 적마다 나무 주위에는 잠에서 깨어나는 물 젖은 바람 소리.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누가 물어 보면 어쩔까.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4
물빛6 / 마종기 물빛6 /마종기 물이 깨어져서 많은 물방울이 된다. 물이 깨어져서 많은 자식이 된다. 물방울은 작지만 많은 자리가 넘치게 차고 色이 온몸에 번진다. 자식은 부모보다 빛나고 아름답다. 물의 아버지가 깨어지지 않으면 빛나는 것은 태어나지 않는다. 물방울이 낮은 곳에 모이면 아버지가 된다. 그래서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4
물빛 1 / 마종기 물빛 1 / 마종기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집니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 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물이 되었다고 해도 처음에는 깨끗하지 않겠지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4
잠시 전에 / 마종기 잠시 전에 / 마종기 잠시 전에 내 몸이었던 것이 땀이 되어 나를 비집고 나온다. 표정 순하던 내 얼굴들이 물이 되어 흘러내려 사라진다. 내 얼굴은 물의 흔적이다. 당신의 반갑고 서글픈 몸이 여름 산백합으로 향기로운 것도 세상의 이치로는 무리가 아니다. 반갑다. 밝은 현실의 몸과 몸이여, 아침 풀..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