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 / 정경미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 정경미 빵부스러기를 끌고 가는 개미 개미 가는 길을 신발로 가로막지 마라 끓어질 듯 가는 허리에 손가락을 얹지 마라 죽을 때까지 시동을 끄지 않는 개미 한 마리가 손등으로 오른다 언젠가 허리띠를 졸라매던 아버지 바짝 마른 허기가 만져질 것이다 아버..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8.10
오후 3시 / 이태순 오후 3시 이태순 벌개미취 흐드러진 간이역쯤 와 있다 흠집 나고 닳아진 나무의자 앞에서 내 모습 참 많이 닮아 편안함이 배어든다 흙 묻은 발을 털며 앉아볼까 생각하다 방금 보낸 이별이, 너무 아플 것 같아 쓸쓸히 머금고 있는 물기를 닦아 준다 내겐 아직 식지 않은, 오후 3시가 기다리..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8.10
감성돔을 찾아서/윤성학 감성돔을 찾아서윤성학 홀로 바위에 몸을 묶었다 바다가 변한다 영등철이 지나 바다가 몸을 바꿔 체온을 올리고 파도의 깃을 세우면 그들은 산란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빠른 물살이 곶부리를 휘어감는 곳 빠른 리듬을 타고 온다 영등 감생이의 시즌이다 바닷물의 출렁거림은 흐름과 갈..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8.10
겨울 운문사에서 / 박수민 겨울 운문사에서 박수민 오래된 풍문처럼 밤새 폭설이 내리면 극락전 솔가지는 그리움에 늘어지고 대숲에 바람 드는 소리 하얗게 쌓였다 묵언에 드는 길은 아득히 멀다마는 어둠을 밟아 오르던 저 단아한 예불소리 문 밖에 기대어 서서 미륵 되어 보았다 마음에 때가 끼어 앉힐 수가 없..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8.10
겨울 강가의 사시나무/정지웅 겨울 강가의 사시나무정지웅 그래 아직은 행복하구나 네 그루터기에 부모 없는 잡풀 몇 키우고 있구나 호주머니에 숨어있는 한 가계의 벌레들 잎사귀에 재우고 나뭇가지에 앉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모두들 잘 보살펴 주었구나 작년부터 꽃 피우지 못하여 영양제 꽂고 긴 겨울을 나더..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8.10
오래된 집은 달밤에 알을 품는다 / 최종무 오래된 집은 달밤에 알을 품는다 최종무 보름 달빛이 마당을 쓸고 있었다 부러진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여물 냄새를 풍기며 올랐다 봉당 무너져 내린 틈으로 구렁이 허물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오얏나무가 뒤울안에 새까만 알들을 수북이 낳아 놓았다 달빛이 알들을 품고 있었다 방에서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8.10
곰팡이/ 이병일 곰팡이 이병일 가마솥에 콩을 넣고 장작불을 지핀다 익은 콩을 절구통에 찧는다 메주는 서늘한 그늘에서 말린다 1 바람 좋은 날에는 가장자리부터 가벼워진다 미세한 햇살조각이 굴절되어 박혀드는 순간에 창을 열듯이 제 가슴을 활짝 열어 벽이 갈리고 있다 거친 난간 위에 포자들은 습..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8.09
오페라 미용실 /윤석정 오페라 미용실 /윤석정 능선으로 몰려든 검은 구름이 귀밑머리처럼 삐죽삐죽 나온 지붕에 한발을 걸친다 그 사이, 좁다란 골목길이 계단을 오르며 헉헉 숨 내쉬는 곳에 할아범 측백나무와 오페라 미용실이 마주 서 있다 그는 매일 미용실 바깥의 오페라를 감상한다 미용실 눈썹처마에 모..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8.09
즐거운 제사/박지웅 즐거운 제사/박지웅 향이 반쯤 꺾이면 즐거운 제사가 시작된다. 기리던 마음 모처럼 북쪽을 향해 서고 열린 시간 위에 우리들 一家는 선다 음력 구월 모일, 어느 땅 밑을 드나들던 바람 조금 열어둔 문으로 아버지 들어서신다 산 것과 죽은 것이 뒤섞이면 이리 고운 향이 날까 그 향에 술..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8.09
꽃 이름, 팔레스타인/경종호 꽃 이름, 팔레스타인/경종호 올해도, 고향엔 칡꽃이 흐드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계집 아이 몇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놉니다. 고무줄이 튕튕 울릴 때마다. 호박이며, 박이며, 수세미 꽃이 핍니다. 어느 새 검정 고무줄에도 꽃이 피어, 달맞이꽃으로 피어, 계집 아이 몇은 노래를 부르..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