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나무에 주목하다 - 박정원 주목나무에 주목하다 - 박정원 옹이진 말들을 채 하지 못해 핀 꽃일까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한 10촉짜리 전구처럼 주목나무, 빨간 열매를 수없이 매달고 있다 저 성전으로 잠입하여 첫 전구를 켜고 싶다 그리고는 꽃도 나비도 없이 맺힌 열매에 대하여 그 많은 색 중에서 유독 빨강을 택..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7.19
돛-유배시편2 / 정 숙 돛-유배시편2 / 정 숙 살얼음이 칼바람 물고 달려드는 밤 서울역 지하도에 웅크린 사람들 세상사 뭐든지 꿰매고 깁던 버릇 버리지 못해 긴장된 순간들을 모아 시간 조각보 박음질하네 가슴 속 낡은 생의 미싱 바퀴를 돌리고 있네 침침한 바늘귀에 실 꿰어 지친 손가락 마디 호고 감치네 끝..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4.27
감자박스를 보낸다 / 이향숙 감자박스를 보낸다 / 이향숙 뿌리를 키우는 일이 단순한 욕망이 아님을 베란다 종이 박스 안 감자는 이미 알고 있었지 제 몸 쪼그라드는 줄 이미 알고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으니 뿌리를 키우는 일이 단순한 인연이 아님을 마른 젖무덤을 택배로 대신한 어미들은 이미 알고 있었지 사..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4.23
멍키의 힘 / 이해원 멍키의 힘 / 이해원 서부밧데리가게 강씨 멍키로 단숨에 숨통을 죄고 트럭의 목을 꺾는다 몇 번 헛발질을 하던 트럭은 네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오줌까지 지린다 강씨의 뒷주머니에 찰싹 붙어 먹이를 노리는 멍키 제네레타 쎄루모타 라지에타 ‘타’ 자만 들어도 식욕이 돈다 차 밑..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3.26
봄의 첫 장 / 권여원 봄의 첫 장 / 권여원 매화나무 아래 서면 허공에 불이 켜진다 겨우내 하늘을 마시며 자란 꽃잎들 가볍고 여린 실핏줄로 터지고 있다 살점을 떼어내듯 분홍빛 지문들이 떨어지는 언덕 위의 붉은 잔 나무는 피를 흘려도 아프다 소리치지 않는다 산자의 어깨에 내리는 저 핏방울 창공에 붉은..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3.26
유성우流星雨 / 박제영 유성우流星雨 / 박제영 1 1929년 스물 아홉의 이장희가 죽었다. 1935년 서른 둘의 김소월이 죽었다. 1937년 스물 일곱의 이상이 죽었다. 1938년 서른 넷의 박용철이 죽었다. 1945년 스물 여덟의 윤동주가 죽었다. 1945년 스물 아홉의 김종한이 죽었다. 1956년 서른의 박인환이 죽었다. 1968년 마흔 일..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3.26
꽃을 심었다/윤제림 꽃을 심었다/윤제림 할머니를 심었다. 꼭꼭 밟아주었다. 청주 한 병을 다 부어주고 산을 내려왔다. 광탄면 용미리, 유명한 석불 근처다. 봄이면 할미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2.21
가을이 아름다운 건/이해인 가을이 아름다운 건/이해인 구절초, 마타리, 쑥부쟁이꽃으로 피었기 때문이다 그리운 이름이 그리운 얼굴이 봄 여름 헤매던 연서들이 가난한 가슴에 닿아 열매로 익어갈 때 몇 몇은 하마 낙엽이 되었으리라 온종일 망설이던 수화기를 들면 긴 신호음으로 달려온 그대를 보내듯 끊..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2.20
우주적 우연 / 이운진 우주적 우연 / 이운진 우주를 가로질러 오는 그대가 만약 그라면 나는 지구의 속도로 걸어가겠어 시속 1674km의 걸음걸이에 신발은 자주 낡겠지만 지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 건 사랑을 믿는 이 별의 아름다운 관습처럼 살고 싶어서였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높..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1.12.29
나는 가고 나만 / 한미영 나는 가고 나만 / 한미영 럭셔리한 호텔 커피숍 젊고 세련된 남자 바리스타 흰 와이셔츠에 단정하게 앞치마 두르고 루왁커피 한 잔 내어민다 사향고양이 뱃속에서 익힌 커피 알맹이 그 배설물로 만든다는 똥커피다 내 어린 시절 할머니 봉지담배를 쟁여 곰방대 피우실라치면 팔각..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1.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