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린다 / 박찬선 풀린다 - 박찬선 ‘풀린다’는 말 그 소리에는 길이 열린다. 핏줄처럼 따뜻하게 이어진 길 길가에 오목조목 냉이 꽃따지 앙징스런 꽃들이 하늘거린다 바람이 꽃대궁을 흔들고 간다 산과 들을 깨우며 가는 바람의 노래 노래로 밝아오는 세상 한 시대를 옭아맸던 끈이 긴 강으로 흐르고 있다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1.06.07
형설 서점 - 양동식 형설 서점 - 양동식 순천 하늘 아래 아마도 하나 남은 헌책방이다 시골 장터처럼 가보고 싶은 곳 싱싱한 물고기 백과 - 끈으로 맨 논어 - 알프스에 잠든 오천 년 전의 남자 - 등등 만원어치만 들고 오면 일 주일은 너끈하다 소문 내지 말자 향기로운 어물전 대승사 목어도 안다 지전동 헌책방 형설서점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1.06.07
동그라미 사랑 - 정용철 동그라미 사랑 - 정용철 아빠는 일을 하고 엄마는 아이를 돌보고 아이는 잠을 잡니다 아이는 아빠의 기쁨이 되고 엄마는 아이의 웃음이 되고 아빠는 엄마의 사랑이 됩니다 아이가 자라 엄마 아빠가 되면 사랑의 동그라미는 다시 돌면서 웃음꽃을 피우고 사랑과 기쁨을 만듭니다 (좋은생각, 2011. 5월호)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1.06.07
둘 - 오세영 둘 - 오세영 혼자서는 아니, 둘이라야 한다. 부싯돌도 두 개가 마주쳐야 불을 내지 않던가. 타오르는 성냥개비도... 보석함에 채워둔 자물쇠 오랜 기다림에 지쳐 녹이 슬었다. 열쇠를 꽂아도 이젠 열리지 않는 문, 굳어버린 마음 혼자서 찔끔찔끔 드는 술이 알콜 중독으로 가는 것처럼 어차피 인생은 녹..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1.06.07
어둠이 아직/나희덕 어둠이 아직/나희덕 얼마나 다행인가 눈에 보이는 별들이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이 별들을 온통 둘러싸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 어둠을 뜯어보지 못했다는 것은 별은 어둠의 문을 여는 손잡이 별은 어둠의 망토에 달린 단추 별은 어둠의 거미줄에 맺힌..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1.02.27
경운기 / 배진성 경운기 / 배진성 들판에서는 늘 보리타작하는 소리가 들린다 정미소 주인이셨던 아버지가 벨트에 물려 끌려가던 날부터, 축이 헛도는 천정에서 다시 떨어지듯 우리 식구들은 빈 들판으로 내쫒겼다 발동기 같은 큰 형은 발동기를 뜯어 짊어지고 논둑길을 넘어다녔다 타맥기도, 부러진 아버지 갈비뼈처..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1.01.25
대숲소리 / 서하 대숲소리 / 서하 구름이 달을 옆구리 끼고 있는 송광사의 밤은 푸르기만 한데 화엄전 월조헌 뒤뜰 대숲이 애터지게 운다 대숲은 마디마다 바다를 들여놓았나 쓰러질 듯 일어서며 쏴아 쏴아 쏴아 뱉어내는 파도소리에 내 몸이 자꾸 뒤로 쏠린다 탁 풀어놓지 못하고 참았던 울음보따리들 오늘은 모조리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1.01.25
11월의 숲 / 심재휘 11월의 숲 / 심재휘 가을이 깊어지자 해는 남쪽 길로 돌아가고 북쪽 창문으로는 참나무 숲이 집과 가까워졌다 검은 새들이 집 근처에서 우는 풍경보다 약속으로 가득한 먼 후일이 오히려 불길하였다 날씨는 추워지지만 아직도 지겨운 꿈들을 매달고 있는 담장 밖의 오래된 감나무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1.01.25
달팽이 약전(略傳) / 서정춘 달팽이 약전(略傳) / 서정춘 내 안에 뼈란 뼈 죄다 녹여서 몸 밖으로 빚어낸 둥글고 아름다운 유골 한 채를 들쳐 업고 명부전이 올려다 보인 젖은 뜨락을 슬몃슬몃 핥아가는 온몸이 혓바닥뿐인 생이 있었다. 시집 <귀> 시와시학사. 2005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1.01.25
수묵산수 / 김선태 수묵산수 / 김선태 저물 무렵 가창오리 떼 수십만 마리가 겨울 영암호 수면을 박차고 새까만 점들로 날아올라선 한바탕 군무를 즐기는가 싶더니 가만, 저희들끼리 일심동체가 되어 거대한 몸 붓이 되어 저무는 하늘을 화폭 삼아 뭔가를 그리고 있는 것 아닌가 정중동의 느린 필치로 한 점 수묵 산수를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1.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