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손병걸 항해/손병걸 비린내 그윽한 다대포 바닷가 꼼장어 구이집 방문 앞에 각양각색의 신발들이 뒤엉켜 있다. 다른 구두에 밟힌 채 일그러진 놈 에라 모르겠다 벌러덩 드러누운 놈 물끄러미 정문만 바라보는 놈 날씬한 뾰족구두에 치근대는 놈 신발 코끝 시선들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어느..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8.09
안개/최재영 안개/최재영 길을 나서면 안개가 먼저 다가온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내력 지상의 열린 틈마다 안개가 스며들고 사람들은 한번쯤 기침을 호소한다 새들은 노래하지 않으며 길은 늘 젖어있다 세상의 새벽은 잠 못 이루는 곳에서 먼저 개어나 충혈된 소음이 도시를 빠져나가고 밤새 안..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8.09
동백, 몸이 열릴 때/장창영 동백, 몸이 열릴 때/장창영 한때는 너도 불 밝히던 심장이었다 눈 밟는 소리에도 온통 가슴 설레어 어쩔 줄 몰라만 하던 붉디 붉은 눈이었다 하기야 그때는 너조차 몰랐을게다 네 몸을 사정없이 훑으며 지나간 것이 한 떨기 바람, 그도 아니면 감당 못할 욕망이었는지 꽃무리 지고 난 후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8.09
날아가는 방/유성찬 날아가는 방/유성찬 이삿짐을 다 싸두고도 아내는, 허공에 걸어둔 종이학하나 어쩌지 못하나보다 산동네 반 지하 단칸 방, 그 밤 내 이삿짐을 싸다가 방안 가득 걸어둔 종이학들은 거두지 못한 채 잠이 든 척 누운 아내, 허공에다 뭘 저리 걸어두었나 날아오른 종이학 무리들 그 밤 내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8.09
철거지역/정경미 철거지역/정경미 굴피집 처마 끝에서 포크레인이 홰를 친다 노란 살수차가 산동네의 새벽을 깨우며 을씨년스런 거리를 적신다 콘크리트 더미에서 요란하게 터져 나오는 철지난 전화부가 다이얼을 돌리며 안부를 묻는 동안 재개발 택지 분양 프랭카드는 부푼 몸을 날리는 햇살에 눈을 뜬..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8.09
흔한 풍경 / 김미령 흔한 풍경 / 김미령 시청 앞 작은 연못에 기억상실증에 걸린 비단잉어가 산다 몰락한 귀족처럼 느릿느릿 헤엄치면 양귀비꽃 수면에 비쳐온다 우리는 그걸 주홍빛 슬픔이라 부른다 허기진 햇빛이 정수리 위에 어른거린다 메마른 광장의 오후 2시가 아가미 속을 들락날락하는 지루한 염천(..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8.09
단단한 뼈/이영옥 단단한 뼈/이영옥 실종된 지 일년 만에 그는 발견되었다 죽음을 떠난 흰 뼈들은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독극물이 들어 있던 빈 병에 는 바람이 울었다 싸이렌을 울리며 달려온 경찰차 가 사내의 유골을 에워싸고 마지막 울음과 비틀어 진 웃음을 분..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8.09
항아리 /최재영 항아리 /최재영 처음 나는 겸손한 흙이었다 진흙 층층이 쌓인 어둠을 밀어내고 누군가와 끈끈하게 얽혀진 숨결 불룩한 옆구리를 뽐내며 어느 집의 연륜을 저장하는, 도대체 우화를 꿈꾸지 않았건만 나는 햇살을 움켜쥐고 내 안의 목록을 삭여내는 중이다 아주 오랫동안 해마다 비밀스런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8.09
돌에 물을 준다 /이선자 돌에 물을 준다/이선자 돌에 물을 준다 멈춘 것도 같고 늙어 가는 것도 같은 이 조용한 목마름에 물을 준다 이끼 품은 흙 한 덩이 옆으로 옮겨 온 너를 볼 때마다 너를 발견했던 물새우 투명한 그 강가의 밤이슬을 생각하며 내거 먼저 목말라 너에게 물을 준다 나를 건드리고 지나는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8.09
물의 노래 - 김충규 물의 노래 - 김충규 밤새 저승의 물살이 흘러와 스민 듯 잔뜩 어두운 강의 수면 위로 햇빛들이 톡, 톧, 소리를 내며 떨어져내린다 내 속의 저승이 울렁거린다 크렁크렁 짐승의 울음을 우는 강 저 수면 위를 맨발로 사뿐사뿐 건널 수 있다면 비록 저 강물이 저승으로 급격하게 흽쓸려가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2.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