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령을 향해 달리다 / 최을원 미시령을 향해 달리다 / 최을원 - 각도 북한강을 따라 올라가 홍천, 인제를 지나 미시령을 향해 달렸네 좁은 국도를 시속 100km로 코너링하다 보면 참 순간이구나, 하는 생각 약간의 핸들 각도에 좌우되는 生 급하게 꺾인 곳에 예각을 찍고 길 밖으로 나간 흔적 하나 선명했네 강변의 갈대들은 모두 지친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6
용설란 / 최을원 용설란 / 최을원 용설란에서 사내 하나 걸어 나온다 작은 체구에 다리를 저는 초로의 멕시코 사내 가구 공장 뜰에서 사포질, 니스칠하며 낡은 모포처럼 웃던 그 사내 그가 대패질을 할 때면 카리브 해안에서 경기도 마석 변두리까지 좁다란 길이 돌돌 말렸다가 떨어졌다 미간의 협곡엔 안데스 산정 늙..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6
벌레나무 하늘 오른다 / 최을원 벌레나무 하늘 오른다 / 최을원 경기도 하남시 인접지역, 누덕누덕한 지붕들 모여 있는 곳 나무 한 마리 하늘 오르는 것 본다 앙상한 발들 꼼질거리며 캄캄한 허공 끌어당기고 있다 작업은 다 끝난 것이다 부서지고 잘려나간 것들 수북한 슬레트 지붕은 뜯겨나갔다 갖가지 소음들 조립하다, 저녁이면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6
육교 / 최을원 육교 / 최을원 자정의 눈 내리는 육교 위 그녀는 地上의 가장 먼 마을에서 달려온 따뜻한 불빛들이 자신의 다리 밑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흘러가는 것들 캐롤도 흘러가고, 온 몸에 추억처럼 알전구 감은 가로수들도 흘러가고, 술 취한 빌딩들도 흘러가고 ...쪽방, 화장대, 한강 유람선, 월..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6
나무의 전모 / 복효근 나무의 전모 / 복효근 늘 다니던 산길에 아름드리 나무 한 그루 지난해 태풍 루사에 쓰러져있다 그 얽히고설킨 뿌리를 하늘로 쳐든 채 하늘 치솟던 높이도 그 끝모를 깊이도 허망하게 무너졌다 한 때는 가지 가득 꽃을 피워 꽃등을 켜놓은 것처럼 언덕이 화안했었는데 바람이 잎을 되작되작 뒤집으면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6
숫돌 / 복효근 숫돌 / 복효근 숫돌을 생각한다 돌에게도 수컷이 있을까 그래, 수컷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알자면 숫돌에 무딘 칼을 문질러보라 무딘 쇠붙이를 벼리는 데는 숫돌만한 것이 없으리 닳아서 누워버린 날을 세우려면 숫돌은 먼저 쇠에 제 몸을 맡기고 제 몸도 함께 닳아야 하는 것인데 명필이 먹에 닳아..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6
넥타이를 매면서 / 복효근 넥타이를 매면서 / 복효근 넥타이를 목에 걸고 거울을 본다 살기 위해서는 기꺼이 끌려가겠다는 의지로 내가 나를 묶는다 한 그릇 밥을 위해 기꺼이 목을 꺾겠다는, 또한 누군가를 꼬여 넘기겠다는 의지 그래서 무엇을 그럴싸히 변명하겠다는 듯 넥타이는 달변의 긴 혓바닥을 닮았다 그것이 현란할수..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6
조선호박 / 복효근 조선호박 / 복효근 잘 익은 조선호박은 자식 둘 기르며 허리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몸매 내 작은 형수 엉덩이 같아서 신난간난 한세월 지긋이 뭉개온 토종의 저 둥근 표정이라니 그속엔 천둥 같은 가뭄 같은 것들도 푹 삭아서 약으로 고였겠다 이제는 따글따글 오뉴월 뙤약볕이 한 말은 여물어서 은빛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6
비누에 대한 비유 / 복효근 비누에 대한 비유 / 복효근 온전히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가령, 비누를 한사코 미끄러져 달아나는 비누를 붙잡아 처바르고 안고 애무해보지만 사랑한 것은 비누가 아니라 비누의 거품일 뿐 비누의 심장에 다가가 본 적 있는가 비누에게 무슨 심장이냐고? 그렇다면 비누가 그런 것처럼 제 살 한 점 선선..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6
수의 패션쇼 / 이해리 수의 패션쇼 / 이해리 강남 한복판에서 수의 패션쇼가 열렸다 죽음의 옷이 사람을 꿰입고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활보한다 산 사람이 죽음의 옷 속에 담겨 조용히 전시중이다 사람들은 수의 위에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어댄다 조명발을 받은 수의는 이 세상처럼 환한데 수의 속 산 사람의 몸은 무덤..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