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상 (자화상)- 장홍만 저녁밥상 (자화상)- 장홍만 내게 돈벌이란 영 재주가 없는 건지 탐탁찮은 가장 노릇에 포크질하던 아내가 살빠진 월급봉투 얇게,얇게 저며 칼질하는, 조촐한 저녁 한끼 된장국 끓는 소리 오래도록 길들인 깊은 맛은 아니어도 공들인 값어치만큼의 그 빛깔은 씹히는데, 거른 적 없는 식탐에도 삭정이,삭.. 좋은 시조 2011.01.16
도산서원에서 - 이순희 도산서원에서 - 이순희 파르라니 타는 혼불 안개로 감싸안고 濃墨의 시대사가 토담으로 둘러쳐진, 안동 땅 들어서면서 옷깃부터 여미었네. 완락재 앞마당엔 한 우주가 터지고 있었네 홀연히 몸을 날린 설매화 다시 이울고 부신 눈 지그시 감고 먼 훗날을 읽고 있었네. 적성산 한 자락이 북풍에 꺾여나.. 좋은 시조 2011.01.16
겨울 판화 - 나홍련 겨울 판화 - 나홍련 바다 빛이 뚝뚝 떨어지는 어물전 좌판대 위 비릿한 냄새 풍기며 하얗게 뒤집힌 고등어들 얼음꽃 차디찬 살갗, 지느러미만 파닥인다. 시퍼런 파도소리 등줄기에 서럽게 실려 아가미를 벌리다가 하얀 소금알 몇 개 문 썰렁한 아침 너머로 먼 바다가 출렁이고. 겨울의 상처들이 찢긴 .. 좋은 시조 2011.01.16
어떤 肖像 - 이숙경 어떤 肖像 - 이숙경 흐린 불빛에 돌연 어지럼증이 일어 불태워 밝히고 싶은 어둔 저 가슴 한복판 천천히 들이붓는다 몇 잔 검푸른 독주 입 닫고 눈 닫고 귀마저 틀어막던 차마 못 깨뜨릴 오랜 고독의 뼈대 누군가 나무마치로 바스러뜨리고 있다 좋은 시조 2011.01.16
유년의 판화 - 성지문 유년의 판화 - 성지문 1 바람도 한 줄 없이 그림자가 일렁인다 눈 먼 기억들을 바늘귀에 꿰는 어머니 남루를 깁는 낙타여 촛불마저 목이 탄다 불빛도 지루한가봐 그을음을 피우는 밤 머언 곳 동정 살피듯 창문쪽으로 떠는 귓볼 밤 새워 사막을 기워온 어머니의 무르팍이여 2 연을 날려보면 아득함에 .. 좋은 시조 2011.01.16
먹감나무 문갑 - 최길하 먹감나무 문갑 - 최길하 물 한 모금 자아올려 홍시 등불이 되기까지 까막까치가 그 등불아래 둥지를 틀기까지 그 불빛 엄동 설한에 별이 되어 여물기까지 몇 해째 눈을 못 뜨던 뜰 앞 먹감나무를 아버님이 베시더니 문갑을 짜셨다. 일월도(日月圖) 산수화 화첩을 종이 뜨듯 떠 내셨다. 돌에도 길이 있듯.. 좋은 시조 2011.01.16
2011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작/쉿!- 고은희 2011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작/쉿!- 고은희 쉿! - 고은희 아득한 하늘을 날아온 새 한 마리 감나무 놀랠까봐 사뿐하게 내려앉자 노을이 하루의 끝을 말아 쥐고 번져간다 욕망이 부풀수록 생은 더욱 무거워져 한 알 홍시 붉디붉게 울음을 터트릴 듯 한 쪽 눈 질끈 감고서 가지 끝에 떨리고 쉬.. 좋은 시조 2011.01.01
바람의 산란 / 배경희 바람의 산란 / 배경희 모든 것이 사라져도 바람은 존재한다 수천 년 살아있는 혼들의 화석처럼 떠돌며 우리의 삶 속에 잔뿌리를 내린다 당신은 허공 속의 자궁에서 태어난다 힘들고 지친 자들의 울음을 파먹으며 온몸을 먹구름 속에 수없이 휘어가며 밤새 비 쏟아지고 나무를 두드렸던 바람새들 불러 .. 좋은 시조 2010.01.24
콩나물 일기 / 조민희 콩나물 일기 / 조민희 하지 무렵 짧은 고요 어둠에 잠겨 든다. 별꽃 뜬 어둑새벽 그믐달과 살을 섞고 쟁쟁한 징소리 내며 두 손 밀어 올린다. 노굿이 날개 접고 지어가는 고치 속에 갇혔다 튕겨진 몸, 바람에 여위어 가고 이제는 못 삭힌 열망 갈증으로 남는다. 눈물로 녹여낼까? 꺼내어 든 물음표 외발로.. 좋은 시조 2010.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