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속도 / 장만호 무서운 속도 / 장만호 다큐멘터리 속에서 흰수염고래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죽어가는 고래는 2톤이나 되는 혀와 자동차만한 심장을 가지고 있다고 내레이터는 말한다 자동차만한 심장, 사람이 들어가 앉을 수도 있는 심장. 나는 잠시 쓸쓸해진다. 수심 4,812미터의 심연 속으로 고래가 가라앉으면서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31
조개 야담·1 / 김선태 조개 야담·1 / 김선태 ―홍합 홍합은 많이 먹으면 예뻐진다 하여 예로부터 중국에선 동해부인(東海夫人)이라 불려왔지요. 삶을 때 우러나는 뽀얗고 시원한 국물과 담백하고도 쫄깃한 육질은 그만이지요. 게다가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드러나는 발그레한 명기(名器)와 예봉(銳峯)에 털까지 수북하게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31
뿔논병아리 외 1편 / 이영옥 뿔논병아리 외 1편 / 이영옥 뿔논병아리 어미가 갓 부화한 새끼를 등에 업고 강을 헤엄쳐 가고있다 어미의 마음이 등 쪽으로 온통 쏠려있다 누구를 업는다는 것은 기꺼이 져 주는 일 이기기 위해 지는 게 아니라 몸을 낮춰 깨끗이 지는 일 져 준다는 것은 바닥에 팽개치지 않고 자신보다 높게 올려 떠받..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31
영혼 속에 핀 부남꽃 1 / 장동윤 영혼 속에 핀 부남꽃 1 / 장동윤 겨울 대둔산에 오르니 눈보라 속 이름 모를 꽃이 꽃망울을 부등켜 안고 귀가 빨갛게 얼어 있다 울지마라 진주는 그많은 시간을 조개에 갇혀 살았단다 밀물과 썰물에 부대끼는 갈대처럼 산바람에 머리 허연 억새가 운다 우는 듯 웃는 듯 흔들흔들 춤춘다 <다시올문학&g..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31
2250년 7월 5일 쇼핑목록 / 최형심 2250년 7월 5일 쇼핑목록 / 최형심 1. 압축된 고요 한 캔 (알프스의 아침 공기와 2:1로 잘 섞어서 쓸 것) 2. 혈압 높은 부모님을 위한 염분을 쫙 뺀 바닷소리 2장 3. 옷걸이에 걸 수 있는 정오 세 가닥 4. 가을바람 두루마리 한 롤, 빗소리 커튼 두 마, 한 장씩 뽑아 쓸 수 있는 시원한 그늘 스무 장 (패키지로 구..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31
레미콘 트럭 / 이동호 레미콘 트럭 / 이동호 아버지는 신이셨다 트럭에 지구를 올려놓고 자주 출타 중이셨다. 지구는 짐칸에서 저 홀로 빙빙 돌아가고, 그럴 때면, 아버지는 저녁 무렵에 돌아오셨다. 아버지의 작업복은 은하수에 젖어 반짝이고, 뉴스에서 열대야가 자주 거론될 때에는, 북극의 빙하를 까만 비닐봉지에 가득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31
용문고시텔 3 외 1편 / 박순원 용문고시텔 3 외 1편 / 박순원 이 오래된 건물은 귀신 천지다 옆방 문이 세게 닫히면 내 방문이 찰칵 열린다 지하에는 노래방 귀신이 새벽 두 시까지 쿵짝거린다 그래도 인간도 귀신도 안중에도 없는 폭주족 귀신보다는 낫다 옥상에는 고양이 귀신 옆방에는 코고는 귀신이 산다 나는 술 먹는 귀신이다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31
바코드 / 고석종 바코드 / 고석종 늦은 오후 봉고차가 바닥에 떨어뜨리고 간 머리 희끗한 한 남자, 긴 목에 허기가 올가미처럼 묶여 있다. 납작 엎드린 채, 가마우지 물갈퀴 같은 고무장화를 허리에 차고 붐비는 발길 사이를 이리저리 헤집는다. 그가 지나는 자리마다 찍힌 바코드 무늬, 한 생이 선명하게 현상되어 나온..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31
어떤 채용 통보 / 반칠환 어떤 채용 통보 / 반칠환 아무도 거들떠보도 않는 저를 채용하신다니 삽자루는커녕 수저 들 힘도 없는 저를, 셈도 흐리고, 자식도 몰라보는 저를, 빚쟁이인 저를 받아주신다니 출근복도 교통비도, 이발도 말고 면도도 말고 입던 옷 그대로 오시라니 삶이 곧 전과(前過)이므로 이력서 대신 검버섯 같은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31
장미편의점 외 1편 / 이가영 장미편의점 외 1편 / 이가영 웃음충전을 하면 삼백육십오일 웃게 된다는 새 포스터가 장미 벽돌로 세운 편의점 유리창에 '웃음충전’ 이 나붙었다 노란 자전거를 타고 온 민들레 소녀가 새콤한 웃음도 있어요. 라고 묻자 편의점 주인 남자가 푸하하하 웃으며 물론 있죠. 라고 대답 한다 백송이 아이스크..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