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요강 / 장순익 홍어 요강 / 장순익 시멘트 봉지로 싼 소포 속에서 군대 간 외아들이 보낸 흙 범벅된 옷가지 그 윗저고리 안쪽에 쓴 어머님 전상서에 얼굴을 비비고 막걸리 냄새를 풍기며 울다 숨이 컥 멎던 아주머니 "이러지 말어유 너무 그러시면 아들한테 해론게 한 삼 년 나랏님한티 양자 보냈니라 혀유" 등 다독거..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9
약국 앞에서 / 신달자 약국 앞에서 / 신달자 이 약국에서 나는 안 사본 약이 없다 위장약 감기약 몸살약 염색약 진통제 상처에 바르는 약 변비약 설사약 수면제 비타민 인공눈물 영양주사약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약을 이 약국에서 샀다 밥보다 많이 먹은 약 사랑보다 많이 먹은 약 그러나 오늘도 약을 산다 약이 내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9
악어의 수다 / 전기철 악어의 수다 / 전기철 나는 밀고자, 육교에서 청색 얼굴을떨어뜨린다. 처음에는 방과 길, 그리고 담장 아래에서 훔친 물건들을 떨어뜨렸지만 곧 시들해져서 살아 있는 고양이를 떨어뜨렸다. 청색 얼굴은 늘 고양이 울음소리를 낸다. 그때마다 육교는 출렁인다. 차들이 치사량으로 달리는 육교 아래 먼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9
그해 여름 숲 속에서 / 김지향 그해 여름 숲 속에서 / 김지향 이른 아침 산을 오른다 아직 바람은 나무를 베고 잔다 동쪽 하늘에 붉은 망사 천을 깔던 해가 숲을 깨운다 숲은 밤새 바람에게 내준 무릎을 슬그머니 빼낸다 베개 빠진 바람머리 나뭇가지에 머리채 들려나온다 잠 깬 산새 몇 마리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그네를 뛰는 사이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9
유리병 속의 가을 / 최형심 유리병 속의 가을 / 최형심 빈집은 수은주 하나를 허리춤에 걸고 있다. 강물로 흘러간 아이들을 기억하고 씨방에 차오른 기억이 서둘러 붉어졌다. 바람의 재료가 바뀔 때, 한층 높아진 귀뚜라미 소리에 수은주는 꼬물거렸다. 부엌 한켠 빈 세숫대야에 고여 있는 어둠, 누군가 저 적막을 떠서 두 손을 씻..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9
부레옥잠 / 장정자 부레옥잠 / 장정자 부레옥잠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제 몸이 아니라 물의 힘이라고 생각한 부레옥잠 돌확의 수심을 짚어보다 조금씩 조금씩 줄기의 한 끝을 부풀리기 시작한다 돌확의 깊이에 대해 제 몸이 너무 무거운가 뼈 없는 여린 물이 주저앉지는 않는가 제 힘껏 가느다란 줄기를 튜브처럼 부풀려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9
앵두씨 / 이정화 앵두씨 / 이정화 조그만 몸으로 피워 올린 꽃잎들로 아찔한 앵두씨 자고나면 무성해지는 잡풀들 사이에서 더디게 나가는 다년생의 뿌리를 붙잡고 울다가 웃다가 혼절했을 앵두씨 억장의 잔가시 같은 가지들을 밀어내느라 밑둥에 새겨놓은 거친 새의 흔적을 내치거나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내보이고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9
클로즈업 / 정민나 클로즈업 / 정민나 샐비어 빨간 허파 속을 한련화의 자줏빛 심장 밑을 노란 장미의 얇은 고막 속을 스프링클러의 물줄기가 맹렬히 지나간다 공기의 막이 쭈욱 찢어지면서 얇은 꽃대들의 근육은 잠시 정신이 혼미해진다 샐비어 꽃잎 이전의 시간과 한련화 잎사귀 한가운데 시간과 장미 실선의 가느다란..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9
아내는 늘 돈이 모자라다 /전기철 아내는 늘 돈이 모자라다 /전기철 아내는 나를 조금씩 바꾼다. 쇼핑몰을 다녀올 때마다 처음에는 장갑이나 양말을 사오더니 양복을 사오고 가발을 사오고 이제는 내 팔과 다리까지도 사온다. 그때마다 내 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투덜거리지만 아내는 막무가내다. 당신, 이렇게 케케묵게 살 거예요,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9
대관령면 골지리 1리 2반 / 유금옥 대관령면 골지리 1리 2반 / 유금옥 이 마을 공기에는 이빨이 있다 물어뜯기다 팽개쳐진 함석집들이 기우뚱, 나가떨어져 있다 산비탈이나 거름더미 귀퉁이 혹은, 외양간이나 개집 옆에 씨부렁거리고 앉아 있다, 무릇 거름더미란 잡초들의 싸움질이나 닭똥 쇠똥을 모아둔 것인데 목청 큰 이장 놈의 허드..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9